돌무더기와 벽돌조각, 철근과 유리파편이 널부러진 잔해 위에서 개들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코를 킁킁 댔다. 땀, 호르몬, 배설물은 물론 숨을 내쉴 때 나는 냄새까지, 사람의 체취를 맡을 때마다 구조견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발을 동동 굴러댔다. 구조대는 구조견이 멈춘 곳에서 잔해를 파헤치고 생존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재난 현장은 유능한 수색견들에게도 위험천만한 곳이다. 생존자 구조작업을 벌이다 다치거나 생명을 잃는 개들의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 국방부는 1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셰퍼드종인 구조견 ‘프로테오’의 부고를 전하며 “그대는 우리의 튀르키예 형제들을 구조하기 위한 멕시코 파견대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완수했다”고 밝혔다.
앞서 멕시코는 모두 16마리의 수색견을 튀르키예 지진현장에 보냈다고 발표했다. 2017년 멕시코 대지진에서 많은 사람을 구조해냈던 수색견들도 이번에 또한번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파견됐다. 지난 7일 멕시코 외교부장관 마르셀로 에브라로드는 수색견들을 튀르키예에 보내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며 “우리 구조대의 심장이 튀르키예로 날아가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프로테오’가 숨진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진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다 세상을 떠났다고 현지 매체 멕시칸 뉴스는 전했다. 프로테오와 함께 구조작업을 펼친 비예다 이병은 “프로테오는 강하고 열심히 일하며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너와 귀국할 수 없겠지만, 나는 너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며 “멕시코인 모두가 너를 절대로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 긴급구조대와 함께 튀르키예 지진피해 현장에 투입된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6살 토백이도 부상을 당했다. 며칠 전 하타이 안타키아 시내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다 날카로운 물체에 앞발이 찔린 것이다. 토백이는 응급처치를 받은 후 다시 현장에 투입됐고, 현재 앞발에 붕대를 감은 채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수색견들은 이번 구조작업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튀르키예 매체인 데일리사바는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에 파견된 수색견 쾨퓌크가 지난 9일 6명의 생존자를 찾아냈다고 전했다. 그중 한 명은 말라티아주의 6층 건물 붕괴 현장에 매몰된 나키르였다. 나키르는 1층에 있다가 매몰됐지만, 쾨퓌크는 두터운 잔해 속에서 나키르의 냄새를 맡았다. 쾨퓌크가 생존자가 묻힌 잔해 위에서 짖기 시작했고, 구조대는 무려 20시간 동안 잔해를 치워 나키르를 구해낼 수 있었다.
수색견이 아니지만 생존자 수색을 돕는 경우도 있다. 말라티아주 시민 우르 샤힌은 카라만마라슈 지진피해 현장을 찾아 구조작업을 돕고 있다. 그의 옆에는 6년 동안 키운 사냥개 알렉스가 함께 했다. 알렉스는 구조견으로 훈련받지 않았지만, 잔해 위에서 생존자의 냄새를 맡으며 구조를 돕고 있다. 샤힌은 “알렉스는 사냥개로 훈련 받아 후각이 매우 민감하다”면서 “현장에 투입되자마자 매몰자가 묻힌 잔해 위에 앉아있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중국, 대만, 카자흐스탄, 인도,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구조견들이 재난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독일매체 도이체벨레는 “최근 재난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적외선과 열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구조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며 “로봇은 잔해 깊이 묻혀 있는 사람의 땀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개의 후각을 이길 수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