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 16년 전 “관습헌법” 결정…여야 합의로는 못 바꾼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헌법을 되짚어보다

2015년 당시 세종시의 모습.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법에 위헌을 결정했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 혹은 헌재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2015년 당시 세종시의 모습.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법에 위헌을 결정했기 때문에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 혹은 헌재 판례 변경이 필요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행정수도는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해 9월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약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2월 국회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신행정수도법)안’을 통과시켰다. 재적의원 271명 가운데 찬성 167, 반대 13, 기권 14표였다. 각 정당 당론은 당시 한나라당 찬성 권고, 열린우리당 찬성, 민주당 자유투표였다. 2004년 5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발족하자 헌법소송이 제기됐다.
헌법연구관 출신 이석연 변호사 주도로 김문희·이영모 전 헌법재판관이 참여했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맞춰 건설된, 행정수도 아닌 행정도시가 세종특별자치시다. 2005년 3월 국회의원 158명이 찬성한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행정복합도시법)’에 따른 것이다.
정부·여당이 연일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16년 전 헌재 결정도 재조명되고 있다. 헌법과 헌재 결정 등을 종합하면 행정수도가 가능한 방법은 헌법 개정 아니면 헌재 판례 변경뿐이다. 판례 변경을 한다면 국민투표를 통한 관습헌법 개정을 허용하는 방향이 유력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헌법적인 분석과 문재인 대통령 등의 입장을 7문7답으로 정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석연 변호사 인터뷰는 이범준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에서 인용했다.

1. 여야가 합의하면 행정수도 이전 가능?

“관습헌법, 국회 손 못댄다”
헌재 판결에 여야 합의 한계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행정수도 관련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면 관습헌법을 앞세운 2004년 위헌 판결이 문제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헌재 결정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짐작컨대 그가 참고한 결정문 구절은 “관습법의 존속요건의 하나인 국민적 합의성이 소멸되면 관습헌법으로서의 법적 효력도 상실하게 된다”일 테다. 하지만 당시 결정은 관습헌법의 형성, 유지, 소멸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정할 수 없다고 했다. 관습헌법의 개폐에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한다면서 ‘국민적 합의’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래서 헌재는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우리 헌법상 관습헌법으로 정립된 사항이며 여기에는 아무런 사정의 변화도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 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고 했다. 관습헌법은 국회가 손댈 수 없다고 못도 박았다. 헌재는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의 경성헌법 체제에서 인정되는 관습헌법 사항은 하위 규범 형식인 법률에 의하여 개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가 합의해도 누군가 헌법소송을 내면, 기존 결정에 따라 헌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

2. 국민적 합의 있으면 헌재 결정 변경되나

‘합헌’에서 ‘위헌’은 변경 가능
위헌된 법은 소멸, 재심 불가능

국민적 합의가 확인되면 헌재가 결정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말한다. 헌재의 결정 변경은 합헌에서 위헌으로만 간다. 네 차례 합헌 뒤에 위헌이 나온 간통죄가 대표적이다. 이와 반대로 위헌에서 합헌이 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위헌이면 법률이 사라지니 위헌 여부를 다시 심판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위헌으로 없어진 법률을 다시 만들면 어떻게 될까. 박범계 의원은 시각장애인 안마사독점 제도가 위헌에서 합헌이 됐다고 했다. 이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 당초 위헌 결정은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요한 내용이 법률도 아닌 시행령에 있어서”가 중요한 이유였다. 이후 시각장애인 독점 규정이 의료법에 다시 들어가면서 합헌이 됐다. 위헌으로 없어진 법규를 살려낸 게 아니라, 위헌 사유를 해소한 새로운 법규를 만든 것이다.
위헌으로 폐지된 행정수도법 등 법률을 그대로 살리는 반복입법이 가능할까. 비슷한 사례가 없고 학자들 의견도 갈린다. ‘안 된다’는 주장은 “헌재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하는데 국회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김하열 고려대 교수)고 본다. ‘된다’는 주장은 “입법은 미래의 일을 정하는 것인 만큼 변화한 현실에 맞춰 같은 내용을 입법할 수 있다”(이황희 성균관대 교수)고 한다.

3. 성문 아닌 관습헌법 어떻게 개정하나

성문헌법 절차와 동일한 조항
학계선 “국민투표 등도 가능”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인 것은 관습헌법이라며 2004년 헌재가 신행정수도법에 위헌을 선언했다. 어떤 법률이 위헌이려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야만 한다. 신행정수도법은 참정권인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고 헌재가 제시했다. “이 사건 법률은 헌법 개정 사항인 수도의 이전을 헌법 개정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단지 단순 법률의 형태로 실현시킨 것으로서 결국 헌법 제130조에 따라 헌법 개정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의 행사를 배제한 것이므로 동 권리를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
헌법 130조는 성문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조항이다. 그런데 헌재가 이 조항을 관습헌법 개정에도 적용하라고 했다. 이로써 관습헌법 개정 절차와 성문헌법 개정 절차가 같아졌다. 위헌 결정의 핵심이면서 가장 비판이 많은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헌법재판관 9명이 발견하고 만드는 관습헌법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으로 만드는 성문헌법과 같아진다. 관습헌법 개정은 성문헌법 개정 절차로 해도 되지만, 그보다 쉬운 국민투표나 국회의 법률 개정, 법원의 판례 변경 등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학계 설명이다(정연주 성신여대 교수).

대한민국헌법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ㆍ국방ㆍ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제130조 제2항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4. 행정수도 위헌 결정, 당시 문 대통령 입장

“전형적인 정치적 판단
두고두고 부끄러운 선례”

문재인 대통령은 헌재의 신행정수도법 위헌 결정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특히 관습헌법이 성문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서만 개정된다는 부분에 의문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2009년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문헌법이 있는 상태에서 관습헌법이 존재할 수 있는지, 존재하더라도 어떤 것들이 해당하는지, 서울이 수도라는 것이 해당하는지, 관습헌법도 헌법 130조에 따라 개정하는 것인지 등 의문투성이였다. 그런데 헌재는 그런 부분을 모두 인정해서 교묘하게 결정한 것 아닌가. 허허. (노무현 대통령이 ‘관습헌법은 처음 듣는다’고 한 게 아니라, 이런 맥락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 헌재로서는 이렇게 가지 않으면 위헌 논리 구성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참으로 교묘하다. 이런 의문에 대해 헌법학계에서 아직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는데, 이 부분은 두고두고 헌법재판소의 부끄러운 선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논리는 몰라도 관습헌법을 들어서 위헌이라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처음에 제소됐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형적으로 정치적인 판단이었다.”
문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직접 발언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2004년 헌재의 위헌 결정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5. 헌법소원 청구인의 위헌 결정 입장은

“관습헌법은 논리의 비약”
수도 이전 국민투표해야

신행정수도법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석연 변호사는 수도 이전을 헌법 72조에서 정한 국민투표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소송을 제기한 내용도 이렇게 설명한다.“수도를 이전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그래서 핵심으로 생각한 것이 헌법 72조 국민투표에 부치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왜냐하면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사안이므로 대통령은 반드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음으로 주장한 것이 (헌법 130조) 국민투표권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소송에서 관습헌법을 주장하지 않았다. “관습헌법은 불문헌법이 아니라 성문헌법을 보완하는 제3의 존재다. 불문헌법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영국에서처럼. 그런데 헌재는 불문헌법의 일종으로 관습헌법을 인정하니 (성문헌법과 같이) 개정하라는 데서 문제가 된다. 청구서에 불문헌법이라고 적지도 않았다. 불문율이라고 썼다. 헌재 결론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비약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소송을 일으킨 이석연 변호사도 소송을 당한 노무현 정부도 관습헌법을 바꾸려면 헌법 130조 개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헌재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6. 국민투표 거친다면 행정수도 이전 가능?

2004년 헌재의 결정에는
국민투표 통한 결정도 막아

헌재가 국민투표도 막아놓았다. 2004년 결정에서 헌법 72조 국민투표를 거치는 행정수도 이전도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는 심각한 논리 모순이 있다. 관습헌법 사멸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헌법 72조 국민투표를 일단 들고는 그 국민투표를 하려면 관습헌법이 사멸되어 있어 한다는 순환논법을 쓴다. “사멸을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국민에 대한 종합적 의사의 확인으로서 국민투표 등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고려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에 이러한 사멸의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략)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 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
헌재 설명대로 국민이 확신하는 관습헌법이 변화·소멸되었음이 확인됐다면, 구태여 헌법 72조에 의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헌법 130조 위반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적극적이었던 것이 이유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72조 위반도 논리구성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 조항은 대통령에게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재량을 주고 있다. 재량이란 게 행사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하지 않았다고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느냐는 반론이 있다.

7. 지금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방법은

가장 확실한 카드는 ‘개헌’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 포함

정부·여당이 행정수도를 이전하려면 헌재를 뛰어넘거나, 결정을 뒤집어야 한다. 뛰어넘는 방법은 헌법 개정이다. 마침 ‘대한민국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이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 있다. 이 조항을 헌법에 넣고 다음으로 수도에 관한 법률을 만들면 된다. 개정 헌법에 수도를 세종시 등으로 명시하는 방법도 있지만 일관성과 명분이 적다. 수도는 헌법사항이 아니라고 노무현 정부부터 얘기해왔다.
다음으로 헌재의 결정 변경을 기대하는 방법이다. 관습헌법 개정 절차에 국민투표나 법률 개정이 포함되면 된다. 정부·여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부치든 법률로 추진하든 누군가 이에 관해 헌법소송을 제기하면 헌재는 다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헌재가 허용하는 방법은 헌법 개정 절차뿐이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법 제정을 택했는데 헌재가 국민투표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신행정수도법이 폐지되면서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헌재가 결정례를 완전히 뒤집어 수도 서울은 관습헌법이 아니라고 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관습헌법 개정 절차만 확대해도 결과가 같은데 헌재 결정의 안정성을 무너뜨릴 이유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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