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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여전한데…서울 노동교육 예산 ‘전액 삭감’한 시의원들

조해람 기자    김나연 기자

청소년은 ‘노동’ 배우지 말라는 시의원들?

서울시교육청 ‘노동교육’ 예산 결국 ‘0원’

본예산에 이어 2차 추경에서도 ‘전액 삭감’

정치논리에 학생들만 ‘노동자 권리’ 침해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서울시의회가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노동인권교육 예산을 본예산에 이어 2차 추경에서도 전액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영화 <다음 소희> 등으로 청소년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조명받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도해 관련 예산을 전부 삭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노동인권교육 예산이 ‘0원’이 된 것은 처음이다.

정치논리에 따른 ‘노동 지우기’로 학생들만 미래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 5일 서울시의회에서 최종 확정된 올해 서울시교육청 2차 추경예산안에서는 교육청이 올린 노동인권교육 관련 예산 1억7276만원이 전액 삭감됐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본예산 심사에서도 서울시교육청이 올린 노동인권교육 예산 3억26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차 추경에서 예산을 절반 가까이로 줄였지만 이마저 무산됐다.

학생들도 선생님도 “노동 교육 필요하다”는데…

청소년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여성가족부의 ‘2020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실태조사’를 보면 아르바이트를 해본 청소년의 34.5%는 임금체불·성희롱 등의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 부당 처우 경험자 대다수는 ‘참고 계속 일했다’거나(74.1%) ‘일을 그만뒀다’(17.6%)고 답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각 시·도교육청은 자체적으로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제공해 왔다. 서울시교육청의 ‘학교로 찾아가는 학생 노동인권교실’은 전문 강사가 중·고등학교를 찾아 ‘노동의 의미와 가치’ ‘노동인권 침해사례 토론’ ‘근로기준법 골든벨’ 등 수업을 진행한다. ‘노동인권 체험교육’에는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답사 등이 들어가 있다. 교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도 노동인권교육 예산에 포함된다.

서울시교육청의 ‘2021년 서울학생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서울 지역 교원 83.4%가 ‘노동 교육은 필요하다’고 답했다. 광주시교육청의 ‘2020년 청소년 노동인권 의식 및 실태조사’에서는 광주 청소년 3289명 중 90.1%가 “학교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현 정부도 지난해 6월 ‘제4차 청소년보호종합대책’에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확대’를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국힘 시의원들 “편향된 노동인권”…결국 ‘0원’

최근 정부가 노동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이른바 ‘반 노동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노동인권교육도 공격받았다.

최유희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지난해 11월25일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노동인권교육 교재를 언급하며 “책임 없고 권리만 강조하고 편향된 노동인권”이라고 했다. 본예산 심의 당시 왕정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학생들이 자라나 노동현장에 나갔을 때 (노동인권을) 알지 못해서 당하는 경우와 교육을 받은 경우는 확연하게 다를 것”이라며 재고를 요청했지만 본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이번 2차 추경에 대한 예비심사보고서에서도 “본예산에서 삭감된 사업을 추경을 통해 편성할 만큼 긴급하고 중요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도 지난해 청소년 노동교육을 교육과정에서 배제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30일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을 발표하면서 교육목표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삭제했다. 이 시안은 같은 해 12월22일 최종 확정됐다. 정부가 교과서에서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지우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선경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청소년은 미래의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이미 아르바이트나 특성화고 현장실습 등으로 노동현장에 있는 이들도 많다”며 “지금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에게 노동교육은 당장 절박한 문제”라고 했다. 또 “유럽 등 해외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서울시교육청은 오랫동안 노동교육을 선도해온 곳인데, 교육청이 의지를 갖고 일관적으로 진행해 온 교육을 정부나 시의회가 모두 부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별도로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없다”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노동’이라는 두 글자가 교육과정에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4년부터 학교에 적용될 새 교육과정에서 노동 관련 내용을 그야말로 ‘통편집’했습니다. 노동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학생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배울 기회를 침해당했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자세한 맥락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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