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문제, 성평등 없이 풀릴까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돌봄 등 성평등 정책 없이
인구문제 해결 발상은 기만적
미래 위해 성평등 정책 다시 써야

요즘 나라 걱정을 하는 분들의 주요 관심사는 인구문제인 듯하다. 공무원이나 공공정책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인구 감소를 우려한다. 이런 걱정은 공직자의 전유물만도 아닌 듯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토론거리로 인구 감소에 관한 소감이 훨씬 더 많아졌다. 인구문제가 인구위기의식으로 심화하는 중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주 발표된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은 4.9명으로, 10년 전인 2012년 9.6명에 비하면 출생아 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정부는 종합대책 발표를 예고했고, 인구통계를 다룬 비슷비슷한 보고서들이 언론에 소개되었지만, 마음을 움직일 만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속수무책이라고 할까? 출산율 반등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필자는 ‘출산율(fertility rate)’ 개념을 사용한다. 다른 국가와의 비교를 위해서이지만, 출산(율)을 여성의 문제로 한정시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데 인구위기의 해법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출생률(단위 지역의 출생아 수)’은 지역의 인구구조 등 다른 변수의 영향을 고려해야 하므로 보조지표로 쓴다]. 오히려 한국의 성인들 누구에게 물어봐도 초저출산의 원인을 서너 가지쯤은 말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반복되는 경제 불안, 일자리 부족, 주택 비용 상승, 돌봄과 사교육 등 자녀 양육 부담이다. 여성이라면 일과 양육을 함께하기 어려운 일터의 문화와 사회적 지원 체계, 가족 내 양육책임의 성별 불균형 등을 꼽을 것이다.

젊은 세대가 자녀를 낳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내 삶도 버거운데 어떻게 아이를 낳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계속되는 경쟁과 삶의 불확실성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그로 인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청년세대의 지배적인 정서가 되었다. 여기에 투자 대비 이익이라는 비용의 관점에서,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투자 비용이 자녀에게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훨씬 초과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자녀를 어떻게 경제논리로 따질 수 있나 물으시는 분도 있겠지만, 투자 대비 효용이라는 법칙이 우리 사회의 주요 행동원리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심각한 수준의 출산율 저하를 경험한 나라들의 사정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국가들은 1990년대 초반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지는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아 나섰고, 스웨덴처럼 미세한 수준의 저하에 민감하게 반응한 국가도 있다. 그들이 선택한 해법은 ‘성평등 정책’이었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출산율 반등(fertility rebound)’이라는 성과를 경험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남성 혼자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워졌다. 여성도 함께 경제적 부양자가 되는 동시에 여성이 전담하던 양육을 국가와 공동체, 그리고 남성이 분담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 성평등 정책의 목표다. 그래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유럽 국가들의 경험은 ‘젠더혁명(gender revolution)’으로 설명된다.

서구 유럽의 경우,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어난 변화를 1차 젠더혁명이라고 부른다. 가족 안에서 양육을 전담하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나가 소득을 얻고 가족의 경제적 부양자가 되었던 시기다. 그러나 1차 젠더혁명은 여성들의 돌봄 책임은 그대로 둔 채 경제활동에만 초점을 둬 이중 부담을 키웠고 출산율은 떨어졌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2차 젠더혁명은 남성의 양육 참여를 강조했다. 남성의 역할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결과 출산율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는 국가의 정책적 노력에 따라 달라졌다. 국가의 주도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성평등 정책이라는 큰길을 외면하고 잡다한 미시적인 정책들로 우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자녀를 키우는 가족에게 일 년에 몇번쯤 방문하는 가사도우미의 조력이면 충분할까? 육아재택근무가 확대되면 그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근무 평가에서, 회사의 주요 업무에서 재택근무자는 동등한 평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여성과 남성이 함께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방안은 왜 멀리하나?

성평등 정책 없이 인구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기만적이다. 이름이 무엇이든, 돌봄 책임을 여성의 어깨 위에 놓고 이런저런 타협책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기에 여성들이 지닌 고민은 훨씬 깊다. 3월8일은 여성의날이다. 한국 사회는 1, 2차 젠더혁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성평등 정책을 다시 써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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