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틀대는 ‘서른살’ 1기 신도시

송진식 기자

일산·분당 등 5곳 29만여가구
재건축 가능 연한 30년 들어서며
아파트 가격 변동 가능성 커져
주변 도시까지 도미노 영향 우려

정부가 미리 큰 틀 대안 마련하고
계획도시 특성 살려 재정비해야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서울의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1960년에 244만명이던 서울시 인구는 1985년에 963만명을 넘어섰다.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강남 개발에 이어 노원, 목동(양천) 등에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했던 정부는 점차 주택수요를 감당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정부가 꺼내든 대안은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의 분산 수용, 지역균형 개발 등을 목표로 한 ‘수도권 200만가구 건설’ 계획이다. 그리고 이 계획을 통해 ‘1기 신도시’가 탄생했다. 고양 일산, 군포 산본, 부천 중동, 성남 분당, 안양 평촌 등 5곳에 총 29만여가구 공급을 목표로 시작된 1기 신도시는 1989년 첫 삽을 뜬 뒤 1996년에 전 지역이 준공됐다. 현재까지 대규모 주택 공급의 주요 수단이자 ‘3기 신도시’로도 이어지는 ‘신도시 사업’의 시작이었다.

1기 신도시의 첫 입주는 분당에서 1991년 9월 말경 시작됐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교통, 생활편의 등 미비한 기반시설 문제로 주민들이 ‘불안한’ 입주를 시작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입주민들이 아예 입주를 꺼린다는 기록도 있다.

1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올해는 1기 신도시가 첫 입주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불안한’ 입주로 출발했던 분당은 이제 ‘천당 아래 분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거주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 됐다. 올 3월 기준 분당의 3.3㎡당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4439만원으로 서울 강동(4210만원), 서울 노원(3251만원) 등 여간한 서울시 자치구보다도 높다. 지난 1년간 평균 매매가가 가장 많이 오른 곳도 분당이다.

■ 재건축 연한 도래하는 1기 신도시

‘30년’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1기 신도시가 갖는 상징성 등을 떠나 아파트의 재건축이 가능한 연한에 들어서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30년이 넘었다고 모든 아파트가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재건축의 ‘관문’으로 불리는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한다. 올해부터는 안전진단 요건이 강화됐다. 1차 안전진단 기관 선정 주체가 기존 ‘시·군·구’에서 ‘시·도’로 격상됐다. 허위 안전진단 보고서 작성이나 보고서 부실 작성 시 처벌도 강화됐다.

그럼에도 재건축 연한이 충족됐다는 사실만으로 부동산 가격은 들썩일 수 있다. 1기 신도시의 경우 최초 공급물량인 29만여가구 중 28만가구가량이 공동주택(아파트)이다. 올해 분당 등 약 5000가구가 30년을 채우는 것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28만가구 대부분이 재건축 연한에 들어간다. 주거환경개선을 바라는 주민들의 요구도 높다. 경기연구원이 2019년에 1기 신도시 5개 지역의 405가구를 대상으로 방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단지 내 협소한 주차장, 주민 교류 및 문화 공간의 부족, 노후한 상하수도, 층간소음 등의 문제에 대한 불만과 개선요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노후화에도 불구하고 1기 신도시는 여전히 선호하는 주거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보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은 지난 8일 발간한 ‘수도권 1기 신도시 현황과 발전방향 모색’ 보고서를 통해 “1기 신도시는 경기도 평균과 비교해 매매가격 상승은 유지되고 회전율(손바뀜)도 높다”며 “전세가격도 강한 상승을 보이고 있어 자산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주거라는 사용가치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1기 신도시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투자수요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건산연 분석 결과 부동산 가격이 오름세를 타기 시작한 2014년 이후 1기 신도시 전 지역에서 서울 거주 매수자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규제가 강화되면 일어나는 일명 ‘풍선효과’가 가장 먼저 일어나는 곳이 바로 1기 신도시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재건축 연한의 도래, 주민들의 높은 주거환경 개선 의지, 거주지로서의 선호도, 투자 내지는 투기 수요의 상존 등 여러 요건을 고려할 때 올해부터 1기 신도시 구축 아파트들의 가격이 들썩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 업계 “재정비 계획 미리 준비해야”

부동산 업계는 1기 신도시에서 당장 올해부터 재건축 바람이 불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1기 신도시 대부분 용적률이 높아 사업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건산연도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은 170~226%로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지역별 용적률을 보면 일산 169%, 분당 184%,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다.

특히 1기 신도시 중 아파트 가격이 가장 높은 분당의 경우 현행 용적률이 법적 상한에 거의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한에서 현행 용적률을 뺀 ‘여유 용적률’을 보면 분당의 1종일반주거지역은 평균 2.5%, 2종일반주거지역은 평균 2.4%, 3종주거지역은 평균 1.6% 수준이다. 준주거지역은 여유 용적률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왔다. 지금 규정대로라면 분당에선 재건축을 한다면 비용부담을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단지별로 주거환경개선에 나서고 있는 곳들은 재건축보다는 리모델링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올 2월 성남시가 분당 정자동의 한솔마을 5단지 리모델링 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최초의 리모델링 사례가 나왔다. 분당구 구미동 무지개 4단지, 정자동 느티마을 4단지 등에서도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을 추진 중이다.

재건축이든 리모델링이든 결과적으로는 아파트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1기 신도시의 노후 주택에 대한 정비계획을 정부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1기 신도시 이곳저곳에서 개발 바람이 불어 가격이 들썩이고, 주변 도시 시세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전에 가격 불안정 요소를 일정부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임대아파트 비율이 낮은 분당과 일산의 경우 용적률 완화 등 고밀개발을 통한 민간 재정비를, 임대 비율이 높은 산본과 평촌은 공공주도의 정비사업 계획을 각각 적용하는 방식도 제안되고 있다.

허윤경 건산연 연구위원은 “1기 신도시가 계획도시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산발적 단지 중심의 정비가 아니라 ‘스마트 도시’로의 변화 등 도시 전반의 기능 향상 관점에서 새로운 정비 수단 모색이 필요하다”며 “리모델링, 재건축 등 정비수단별 혼란에 따라 주택시장 불안 요인이 커질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큰 틀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 2월 22일자 (https://stib.ee/2H57)에 소개되었습니다. 1기 신도시 이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뉴스레터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매주 화~금요일 점선면을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 (https://url.kr/jhqy7k)에서 구독을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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