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고 당당하게 존엄을 말하다…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전쟁의 얼굴’들

러시아 침공 1년…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이 만난 시민들

[주간경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1년이 넘었다. 우크라이나의 평범했던 시민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을까. 지난 2월 16일부터 열흘간 우크라이나에 머물며 30명의 시민을 인터뷰한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이 현지취재 후기를 보내왔다. | 편집자 주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키이우로 진격하려는 러시아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르핀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차량들이 쌓여 있는 공터 앞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이르핀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키이우로 진격하려는 러시아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르핀에서 주민들이 파괴된 차량들이 쌓여 있는 공터 앞을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이르핀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보채지 않는 아이들

지난 2월 15일 오후 8시 폴란드 바르샤바 서부 터미널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행 버스에 올랐다. 개전 1주년을 앞두고 러시아가 국경 근처로 전투기를 끌어모으고 있다거나 올봄 대공습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키이우까지 18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휴게소에 들르겠지만 혹시나 낙오될 수도 있으니 내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화장실에 안 가려고 물도 몇 모금만 조금씩 나눠 마셨다. 하늘을 찢는 전투기 소리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가 내 눈앞에서 펼쳐질 수도 있을까. 버스 안이 고요해 더욱 으스스했다. 그러다 버스 안이 고요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분명히 그 버스 안에는 아이들도 타고 있었다. 보채는 소리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약 4시간 만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에 닿았다. 검문소에서 여권 검사를 받으면서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대여섯 살 남짓한 아이는 검문소 화장실에서야 짜증을 냈다.

날이 밝고 정오가 될 무렵 버스는 키이우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인 지토미르에 도착했다. 어느 엄마와 열 살 정도로 보이는 딸이 버스에서 내렸다. 터미널에서 기다리던 군복 입은 아버지는 딸을 품에 쏙 넣고 껴안더니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고속버스에서도 보채지 않는 아이. 터미널에서 서로를 껴안고 놓지 않는 가족들. 향후 이어진 9박10일의 우크라이나 취재에서 가장 먼저 본 전쟁의 얼굴이었다.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라본 수도 키이우는 겉으로는 평온했다. 매일 공습경보가 울렸지만, 실제 공습이 이뤄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공습경보 와중에도 출퇴근하고 일을 했다. 하지만 ‘버스에서 조금도 보채지 않는 아이’처럼 전쟁의 얼굴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기습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두 다리를 잃은 올레크 시모로스가 키이우 오베리흐병원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던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 자원 입대했다.  키이우|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두 다리를 잃은 올레크 시모로스가 키이우 오베리흐병원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던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 자원 입대했다. 키이우|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탱크는 무서웠으나 우린 도망가지 않았다”

상이군인 올레크 시모로스(25)는 키이우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었다. 지난 2월 17일 키이우의 한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이불을 말끔하게 개어놓고 정자세로 앉아 취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한 얼굴과 곧은 허리 아래로 한 뼘 정도만 남기고 잘린 다리가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와 충격적이었다. 지뢰로 인한 부상이었다. “혹시나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말하기 힘들어지면 언제든 인터뷰를 중단해도 좋다”고 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올레크 시모로스는 지방정부의 인권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빗발치는 포탄과 총알이 “너무 무서웠다”고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도시를 잃는 게 더 두려웠다”고 했다. 자신과 함께 자원입대한 행렬을 보면서 버텼다. 전쟁이 끝나면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인권변호사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도 했다. 전쟁터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새긴 병사가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평화협상에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참혹한 모습과 당당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의 태도를 보면서 슬퍼졌다. 지사(志士)란 이런 사람일 것이다.

키이우, 바흐무트, 하르키우 등 전선만 골라다녔다. 부대원이 70%까지 전멸한 전투에서도 살아남았다. 지금은 키이우에서 행정병으로 근무 중인 니콜라이 코발(39) 이야기다. 그는 키이우 근교에서 벌어진 첫 전투에서 러시아군 탱크 16대를 만났다. 상대하는 우크라이나군은 포병과 보병만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는 “탱크의 포를 쏘는 속도는 너무나 빨라 보병들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죽는다”며 “무서웠다.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탱크가 보병을 향해 돌진하면 도망가는 것이 상식인데 놀랍게도 아무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수류탄을 던지며 저항했다고 한다. “무서웠다”와 “도망가지 않았다”는 말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에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집과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스비틀라나 젤다크가 폐허가 된 자신의 집 앞에서 전쟁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체르니히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에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집과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스비틀라나 젤다크가 폐허가 된 자신의 집 앞에서 전쟁 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체르니히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나는 왜 혼자 살아남았을까”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150㎞가량 떨어진 도시 체르니히우에서 만난 스비틀라나 젤다크(45)는 ‘공습’이 민간인에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들려줬다. 지난해 3월 3일 스비틀라나의 집에 미사일이 떨어져 그는 남편 미하일로(42), 딸 폴리나(21), 예비사위 예우헨 코발렌코(33), 아들 렙(14), 할머니 할리나 페체르나(86)를 한꺼번에 잃었다.

위험수칙대로 집에서 납작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마당에 미사일이 떨어지며 땅이 움푹 꺼지고, 집이 무너지고, 건물 잔해에 가족들이 깔리고,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흔들어보고, 119에 신고를 하고, 즉사한 가족과 숨이 남은 가족을 하나씩 확인하다가 나머지 건물 잔해가 떨어져 아들의 머리를 강타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던 짧고도 긴 시간을 설명하는 데 1시간가량이 걸렸다. 스비틀라나는 지금도 “대체 나는 왜 혼자 살아남았을까”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다고 했다. 건물 3개층이 날아간 호텔 등 체르니히우 곳곳의 무너지고 부서진 잔해는 현대 무기의 파괴력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전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비틀라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동이 떠올랐다. 이런 공습을 매번 겪고 있었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드론이나 정보전 등 신기술이 주목받고 있지만, 전쟁의 패턴과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왔다. 지금도 전쟁은 공습으로 시작한다. 전투기와 미사일을 동원해 방공망을 파괴한 다음 탱크가 돌진하며 상대방 병사들을 살해한다. 그러는 동안 후방에서 포병이 지원한다. 상황이 종료되고 보병이 들어가 행정청사에 깃발을 꽂으면 ‘전투의 승리’라고 부른다. 민간인 학살 등은 보병이 깃발을 꽂고 도시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대개 이뤄진다. 목숨을 잃는 대다수가 보병이다.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대체로 보병이다. 그래서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영화들은 보통 보병의 전쟁을 다룬다. 반면 공군 위주인 공습은 어딘가 깔끔해 보인다. 표적만 골라 파괴할 수 있을 듯한 느낌마저 풍긴다. 공격하는 쪽의 희생도 적다. 이 왜곡된 이미지 때문에 중동의 전쟁이 더 오래 지속된 건 아니었을까. 알고 보면 모두 착시일 뿐이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는 시선은 지역마다 온도차가 있다. 유럽은 충격에 빠졌고 단결했다.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식량위기 등을 겪는 남반구 국가들의 시선은 다소 미지근하다. 역설적으로 체르니히우를 방문해 이 전쟁을 바라보는 중동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공습을 겪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세계는 얼마나 위선적으로 보일까. 더 일찍, 더 깊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더 이상 ‘공습’이란 단어에서 매끄러운 질감을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키이우의 한 지하 보도 입구 우크라이나 군 홍보 광고판 앞에서 한 여인이 꽃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긴 전쟁에 맞서고 있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키이우의 한 지하 보도 입구 우크라이나 군 홍보 광고판 앞에서 한 여인이 꽃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일상을 유지하면서 긴 전쟁에 맞서고 있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그들이 만들고픈 사회

지난 2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를 깜짝 방문했다. 키이우 시민들의 반응을 알아보라는 응당한 지시를 받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바이든이 와서 너무나 기쁘다”는 대답이 예상되는 질문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미국만 바라보고, 미국의 은혜에 감사하는 수동적 시민의 모습을 전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실상은 달랐다. 시민운동가 막심(45)은 “매우 기쁘다”면서도 부연했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에 올 때마다 뭘 요구한다. 부정부패를 해소해라. 투명성을 유지하라. 시스템을 개혁하라. 자유시장을 유지하라.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내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바이든은 우리의 친구다.” 그는 국제정치의 계산을 떠나 서방의 요구가 우크라이나인으로서 만들고 싶은 사회상에 부합한다고 본다. 공무원 올렉산드르(42)는 “바이든이 속한 세계의 사람들은 문명화된 세계, 진보, 시민적 가치, 정의와 진실, 자유 그리고 존엄을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외세에 대한 막연한 추종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좀더 나은 사회로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세계를 위해, 존엄을 위해 싸운다는 군인들의 말들도 같은 맥락이었다.

바이든 방문 소감을 들으러 간 키이우 독립광장에는 유로마이단 혁명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이날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존엄혁명) 9주기였다. 2013년 말 친러시아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논의를 중단하자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도 키이우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2014년 2월 20일 경찰특공대가 유로마이단 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100여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키이우에 들어와 있던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광장 주변에는 채식 메뉴를 팔고 독서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북카페가 있다. 기후, 환경, 인권, 아동복지 등의 사업을 하는 시민단체 사무실이 즐비해 있다. 유로마이단 혁명을 겪으며 만들어진 단체들이라고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군인 가족 지원 조직 ‘베테랑 허브’에서 일하는 마리아 스테치우크(36)도 “나는 ‘존엄혁명’의 영향을 받았다”며 “존엄혁명은 독립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탈식민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부패와 과두제가 지배하는 러시아의 길을 벗어나 공정한 사회를 원했다. 그래서 혁명에 참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리나’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 여성이 딸 키라를 데리고 키이우 숲 묘지공원에서 남편의 묘를 찾았다. 리나의 남편은 지난달 루한스크에서 전사했다. 리나는 “남편은 에너지가 넘치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아이는 조용히 엄마 손을 잡았다.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리나’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 여성이 딸 키라를 데리고 키이우 숲 묘지공원에서 남편의 묘를 찾았다. 리나의 남편은 지난달 루한스크에서 전사했다. 리나는 “남편은 에너지가 넘치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아이는 조용히 엄마 손을 잡았다.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가장 많이 들은 말 ‘존엄’

비로소 우크라이나인들이 강렬하게 저항하는 이유의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이날 이후 미리 약속을 정해놓은 사람들뿐 아니라 무작위로 사람을 많이 만났다. 광장과 묘지공원, 시장 등을 잇달아 방문해 말을 걸었다. 열흘 동안 거의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가장 인상적 공간을 꼽으라면 키이우 외곽의 숲 묘지공원이었다. 전사자 묘역에 나부끼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시각적으로도 강렬했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전사자들의 묘비가 유독 많이 세워져 바흐무트 인근 지역의 전투가 얼마나 처절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전사자의 연인, 전우, 아내, 부모를 만났지만 누구도 오열하지 않았다. 그게 비통함을 더했다. 묘비는 앞으로 얼마나 더 세워질까.

시민들은 하나같이 존엄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전쟁에 시달리는 이상 러시아에 대한 복수심이 들 법도 한데 “우리는 승리를 원한다”며 최대한 절제해서 표현했다. 키이우에서 일상은 잘 유지되는 듯했다. 시민들도 최대한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한계가 뚜렷했다. 전쟁을 겪는 나라 시민들의 표정이 밝을 순 없었다. 사진을 찍어보면 활짝 웃는 얼굴들이 많았다. 외신기자 카메라에 최대한 품위 있게 찍히려는 그들의 노력이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동안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도 품위 혹은 존엄으로 번역할 수 있는 디그니티(dignity)였다.

독일 베를린에서 1년간 난민생활을 하다 돌아온 잔나 스트리젠코(56)는 전쟁을 통해 인류애와 삶의 품격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승리 없는 세계 평화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훨씬 멀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푸틴을 전범재판에 기소해 전 세계에 문명과 ‘존엄’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운전하는 국제법정행 호송차량에 죄수복을 입은 푸틴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와그너 용병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타고 있는 모습의 자석을 판다. 자석에는 ‘이르핀-부차’, ‘마리우폴’ 등 전쟁범죄가 벌어진 지명이 적혀 있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자석.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운전하는 국제법정행 호송차량에 죄수복을 입은 푸틴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와그너 용병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타고 있는 모습이다.  | 박은하 기자

우크라이나 키이우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자석.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운전하는 국제법정행 호송차량에 죄수복을 입은 푸틴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와그너 용병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타고 있는 모습이다. | 박은하 기자

우리는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월 25일을 지나면서 월스트리트저널(WSJ) 같은 서방 언론에 젤렌스키 정부의 부패를 강조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있다. 우크라이나로 집중되는 지원을 다른 가난한 나라들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평화주의 논리에 따라 무기지원에 반대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평화주의자들이나 사회운동가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무기를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화는 과연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평화협상이란 어쩌면 ‘존엄한 사회’, ‘품위 있는 삶’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열망까지 주저앉혀야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가 정녕 평화일 수 있을까. 침략을 당한 국가의 자유와 존엄한 사회에 대한 열망을 주저앉힌 국제사회가 군축을 합의하고 가난한 세계를 지원할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묘비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딸을 껴안고 놓지 못하는 군인 아버지를 계속 전선으로 내몰아야 할까. 한편으론 무기를 들고 존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겠다는 저 열망을 외면해야 할 것인가.

비통한 감정을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지난 2월 26일 밤 바르샤바행 기차를 탔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 전쟁을 기억할 때 강대국의 지정학적 논리보다 더 먼저 떠올려야 할 게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장면들을 분명 보았다. 전쟁의 고통, 폭력의 잔인함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적 열망이었다. 국제사회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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